프롤로그 물건, 그 이야기의 시작
생각해보면 물건은 인간보다 오래 산다. 살면서 인간의 별의 별 꼴을 다 보았을 것이다. 길게 늘어뜨려진 그들의 삶의 궤적을 다 알 수 있는 방도는 없지만 분명 수 없이 다양한 공간을 경험하고 버려지기를 반복했을 것이다. 분명한 것은 한 물건이 닳아 없어지기까지 인간은 살지 않는데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. 어쩌면 인류는 이렇게 지구를 포화 상태로 만드는지도 모르겠다.
그러나 버려지지 않는 삶도 분명 존재한다. 대대손손 전해 내려 온 귀중한 물건들은 그 물질적 가치를 떠나 이미 귀중하고 소중한 티가 난다. 할아버지가 엄마 결혼 선물로 물려주셨다는 자개장은 한 눈에 봐도 사람 손을 타 윤기가 나고, 할머니가 장작불을 때서 밥을 짓던 솥은 이미 몇 십년도 더 되었다는데 새 것보다도 반들반들하다.
이렇듯 손 때 묻은 오래된 것에는 늘 사연이 있기에 좋다. 아주 매끄럽고 완벽한 것은 매력이 없다. 깨지고 금이 간 것들은 역사를 담고 있기에 시간이고 사연이겠지. 19세기 말에 시작되었으나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프레스코화를 보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, 금이 간 벽에 스미는 늦은 저녁의 석양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처럼 말이다.